점점 가까워지는 제주 4·3 유족회와 권력…이게 최선입니까?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가 4·3의 전국화 실현에 기여한 공로로 원희룡 제주도지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원 지사가 감사패를 받을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따질 가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올해가 4·3 사건 70주년이 되는 해인데다, 도지사라는 자리에 있으면 누구라도 그 분 만큼은 했을테니까요.

보도자료는 유족회가 아닌 제주도가 작성해 배포했더군요. 17일자 <원희룡 지사, 제주 4·3 전국화 공로로 감사패 수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이죠.

간단히 소개해드리자면 유족회 오임종 회장 직무대행과 임원 7명이 이날 오전 원 지사를 찾아 감사패를 전했는데요. 오 직무대행은 “올해는 4·3역사상 최고의 한 해였다.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큰 관심과 의지를 갖고 전 국민과 세계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한데에 모든 유족들의 고마운 마음을 담았다”고 전했다는데요. 유족회 임원들 역시 “앞으로 제주 4·3이 지향하는 화해와 상생, 평화, 인권의 가치 실현을 위해 지속적인 협조를 당부한다. 4·3 특별법 개정안의 처리를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건의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유족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유족회와 더불어 행정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적극 돕겠다”고 보도자료는 전하고 있습니다.

유족회 내부에서 어떤 논의과정을 거친 후에 원 지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기로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의를 했습니다만,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내용을 듣지 못했습니다. 유족회의 명의로 전달하는 감사패인데도 그 취지와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담당자가 필요하더군요. 꼭 공무원에게 민원 전화를 넣었는데 이리저리 빙빙 돌리듯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원 지사가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특별위원회 폐지 법안에 공동 발의하고 제주에 계엄령을 내리고 군과 경찰을 보낸 이승만을 미화하는 인터뷰는 이미 지난 3월 팟캐스트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414?e=22561870) 이 뿐만이 아니죠. 4·3을 왜곡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추진과 관련해 ‘찍소리’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노코멘트’ 발언으로 유족회는 물론 도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그런 원 지사가 4·3의 전국화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보십니까? 원 지사가 전국화를 위해 누구를 만나고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어떤 정치적 상처를 감내했는지 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4·3추념식에 찾아 감동적인 연설로 유족들을 어루만진 문재인 대통령이나 시를 낭송한 이효리씨가 더 받을만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알쓸신잡>을 통해 4·3을 알린 나영석PD나 얼마전 KBS제주방송총국을 통해 열정적인 강연을 펼쳤던 도올선생이 더 고민해 볼만 하겠군요.

원 지사의 자격 문제는 논외로 하고요…이번을 계기로 저는 유족회의 우려되는 행보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4·3을 금기시하는 지난 시절 동안 유족회는 누구보다 많은 희생과 고통, 때로는 편견을 감내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만큼 강력한 연대로 한 목소리를 내며, 누구보다 막강한 조직력을 지닐 수밖에 없음도 일정 부분 인정합니다. 유족회가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일부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한 단결인 만큼 이를 나무랄 수 없었습니다.

강력한 조직력은 선거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냈죠. 지난 두 차례 보수정권에서 치러진 총선 에서 현재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후보들의 개인 의지나 성향과는 상관 없이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4·3이 제주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하고 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족회의 행보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유독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선거를 앞둔 지난 6월 강창일과 오영훈 두 명의 제주 국회의원들이 일부 유족회 임직원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한 일이 있었는데요.

“유족들이 뭐에 현혹됐는지 일부가 (원희룡 후보 캠프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심히 우려된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생각해서라도 유족들이 이러면 안된다”(강창일) “일부 유족들이 원 후보를 지원하는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무소속 후보를 지원한 유족들을 분명히 기억하겠다”(오영훈)

이런 발언들이 알려지자 유족회는 거세게 반발했고, 두 국회의원들은 결국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캠프 활동은 어디까지나 전직 임원들의 개인적인 선택에 불과한데, 두 사람이 이를 빌미로 전체 6만 유족들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미 6월 에피소드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http://www.podbbang.com/ch/14414?e=22627698)

하지만 유족회와 도정의 수상한 밀월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거 직후 현직 유족회장의 행정시장 내정설이 솔솔 나왔고, 아니나 다를까 공모 결과 서귀포시장 자리에는 당시 유족회장이던 양윤경씨가 내정됐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꼼꼼한 재테크 비법을 도민 사회에 공개하며 꿋꿋하게 시장 자리에 오른 양 시장님, 요즘은 영리병원과 블록체인의 홍보전문가 노릇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죠.

내년 4·3 관련 예산이나 특별법 처리 등등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된 것이 없는데, 원 지사에게 돌아간 감사패가 뜬금 없어 보이는 건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또 앞으로 원 지사는 오늘 받은 감사패를 면죄부로 삼아 얼마나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펼칠까요?

전교조가 그러하듯, 민주노총이 그러하듯…이제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도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닌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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