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수뇌부 “제주 4·3 초토화 작전 최고 수준 사고”

미국 국립문서기록청에서 자료를 검색하는 모습 <제주 4·3 평화재단 제공>

– 43평화재단, 미국자료 현지조사 결과 3 8천매 입수 

제주 4·3 사건을 바라보는 미군정의 극단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대거 발견됐다. 당시 미국이 남한의 단독선거를 밀어붙인 이승만 세력의 초토화 작전을 옹호하고, 불법 군사재판을 묵인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 12 지난해 미국자료현지조사팀 구성, 6개월 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중심으로 43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관련 기록 3 8천여 매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미국자료 조사는 지난 2001 4·3위원회가 실시한 이후 18 만에 재개된 것이라고 재단측은 설명했다.

재단은 이번에 확보한 자료 중에는 미군정과 군사고문단 수뇌부의 인식을 직접 기록한 자료들이 많다이런 정보를 정부 최고수뇌부가 공유,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다.

미군정 수뇌, 단독선거 반대자범죄자 규정

우선 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이 5·10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정치범수준을 넘어범죄자 취급했으며, 제주 사람들을 대상으로 초토화작전을 훌륭한 작전으로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군최고사령부(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SCAP) 자료에 따르면, 미군정의 최고책임자인 하지(Hodge) 중장은 남한의 단독선거를 앞둔 1948 3 3 UN임시위원단과 덕수궁에서 가진 회의에서정치범(political prisoner)’ 대한 정의를 놓고 극심한 논쟁을 벌였다. 

UN임시위원단은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찬성도 반대도 있으니 그들을정치범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 지적했다. 그러나 하지는선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파괴하는 자들을 어떻게 정치범이라고 부를 있는가. 동기는 정치적일지 모르나 범죄자일 뿐이다라며 강력하게 맞섰다. 

임시위원단은우익세력이 그런 행동을 해도 마찬가지냐 따졌고 하지는그렇다 답했다. ‘정치범범죄자 대응방식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재단은 하지의 같은 답변에 대해 “510선거를 반대한 제주지역에서 미군의 지휘 아래 한국 군경과 우익단체에 의한 무차별 학살이 저질러지게 배경을 설명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했다.

1948 7 2일자 국무부 문서에는 하지의 정치고문 제이콥스(Joseph E. Jacobs) 제주의 최고지휘관 브라운(Rothell H. Brown)대령의 보고를 바탕으로 제주도민의 80% 공산주의자와 관계되어 있거나 공포 때문에 그들과 협조하고 있다고 국무부에 보고한 내용도 담겨 있다. 

1949년 1월 ‘싹쓸이(cleaning-up)’와 로버츠 장군의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라고 극찬한 내용을 기록한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 <제주 4·3 평화재단 제공>

초토화 작전 추진 계획 두고 “최고 수준의 사고”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Roberts) 공한철 등 미군 보고서에는 제주도에서 소위 초토화작전을 의미하는 ‘싹쓸이(cleaning-up)’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에 의하면, 로버츠 준장은 1949년 1월 28일 “공산주의자들을 싹쓸이하기 위해 제주에 1개 대대를 추가 파병하겠다”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서한에 대해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라고 극찬했다. 

극동군사령부 정보요약 보고에서도 우익세력의 행위에 대한 하지의 답변과는 달리 미군은 1949년 2월 20일 제주에서 민보단이 76명의 주민들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을 때 “그들에게 ‘주의(brought to the attention)’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극동군사령부 문서 1949년 7월 21일자에는 유재흥 대령의 귀순공작과 사면정책에 의해 하산한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즉 “약 2천 명의 공산주의자들(Communists)에 대한 재판이 제주도에서 최근 진행되었다. 350명의 사람들이 사형을, 약 1천 650명이 20년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4‧3 군사재판 수형자중 일부가 지난해 한국 법원에 의해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과 국가보상판결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당시 미군은 ‘공산주의자들’이란 누명을 씌우고 불법적인 재판과 가혹행위를 가해도 용인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재단은 강조했다.

1948년 7월 “제주도민의 80%가 공산주의와 관계되어 있다”는 식으로 보고된 미 국무부 문서 <제주 4·3 평화재단 제공>
1949년 사면정책에 의해 하산한 2천명을 ‘공산주의자들’로 몰아세워 사형 350명 등 중형을 선고했다고 기록한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 <제주 4·3 평화재단 제공>

4·3 미국자료집 발간 예정…올해도 자료조사

4·3평화재단은 이번 조사에서 확보한 3만8,500여 매의 기록물을 모두 스캐너를 이용해 수집함으로써 ‘4·3 아카이브’ 구축의 토대도 마련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올해 말까지 수집자료 등을 정리한 ‘4‧3 미국자료집’을 편찬할 예정이다.

다만, 미 육군정보참모부가 보유한 제주관련 파일이 비밀해제되지 않았다며 올해도 현지 자료 조사팀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