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지만 투박한 리본을 매단 녹색 난초의 대학살 시기는 역시나 공무원 인사철이 아닐까 합니다. 매우 소중하고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는 표정도 잠시…쥐똥 만큼의 기술이나 애정조차 없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 푸른 생명의 대부분이 몇 달 후 사무실 구석에서 쓸쓸한 생애를 마감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김영란법이 전면 시행된 2017년 이후에는 이 같은 대량 학살의 풍경도 옛날 이야기가 됐습니다만, 화환으로 태어난 그 불행한 운명을 어찌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한 언론사에 다닐적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승진을 축하하는 화환을 공무원들이 보냈는데, 화분에서 리본만 떼어 내 사무실 벽에 줄을 맞춰 붙이더군요. 나머지 화환은 대충 어떻게 정리했는데요. 아마 누구누구가 화환을 보냈는지 기억하고 화답(?)하기 위한 그 분 고유의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에 쓴 웃음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깐 말이 옆으로 샜습니다. 사실 오늘은 화환 얘기를 하려고 마이크를 잡은게 아닙니다. 공무원 인사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지난주 방송에서 인사철마다 반복되는 도내 일간지들의 극성스러운(?) 보도 행태를 얘기한 바 있죠. 하루에 찍어내는 16면 가운데 무려 4면에 깨알 같은 인사발령 명단이 박혀 있는 괴이한 모습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공무원 인사철에 화환을 주고 받는 모습은 제주만의 현상은 아닐겁니다. 인사 인동은 어찌보면 전국적으로도 비슷한 일이 늘상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그런데 제주에서 관찰되는 독특한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무원 승진이나 전보를 축하한다는 신문광고가 유별나다는 겁니다. 승진했다고 광고, 위원장 취임했다고 광고, 박사 학위 땄다고 광고, 대학 입학했다고 광고…함께 나누면 기쁨은 늘어나고 슬픔은 줄어든다고 하잖습니까? 뭐 좋습니다. 그런데 누가 광고를 내느냐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거든요. 공무원의 고향이나 동창들이 내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가족과 친지들이 광고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본 한 승진 축하 광고는 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 어선주 협회 임원들이 공무원의 승진과 전보를 축하는 광고인데요. 아마 직관적으로 아시겠지만 어선주 협회라 하는 것은 고기잡이배를 소유한 어민들의 자발적인 모임 아니겠습니까? 이들이 축하 박수를 보낸 공무원 4명, 모두가 제주도 수산직렬의 고위 공무원입니다.
가늠컨데 어선주 협회는 직접적인 직무관련 단체로 이들 4명의 공무원들은 이해당사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어업단체의 운영비 지원과 각종 경비 지원은 물론이고, 시설 보수 및 보강 사업과 기반시설 예산 지원, 심지어 낚시대회나 해안변 정화활동 같은 자잘한 활동에도 도민들의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금 투입을 결정하는 사람은 수산직렬 공무원들이겠죠.
제가 본 신문광고가 문제가 없다고 전제한다면, 제주도 교육공무원의 승진이 있을 때마다 학원연합회와 유치원연합회에서는 광고를 해야 하고, 소방이나 경찰 공무원의 승진이 있는 경우에는 관련 사업부분의 단체가, 당연히 건설사들은 관련 공무원 인사를 챙겨야 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아직 안타깝게도 김영란법에는 이 같은 사항을 금지할 수 있는 조항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직무 관련자에게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사교와 의례, 부조 같이 부득이한 경우에는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상한선을 원칙으로 농수산물은 10만원까지, 경조사는 5만원이지만 조화는 10만원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관계 공무원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안된다고 생각하고 고치는 것이 맞지만 현행법상 기준이 모호하고 판례가 없다보니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공무원 승진 광고가 제주에만 있는 문화이고 자발적으로 집행하는 면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이죠.
공직사회의 청렴을 그토록 강조하시는 원희룡 제주도지사님. 지난해에는 관련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소통혁신정책관까지 영입하셨는데 뭐라도 좀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