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석문 제주도교육감 1주년 설문조사 뜯어보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입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된 설문조사를 모두 지켜본 저의 최종 소감입니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부터 별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설문조사 곳곳에서 이미 정해진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징후(?)들이 보였으니까요. 그렇다고 설문조사를 진행한 <리얼미터>를 탓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론조사 기관의 제한된 자율성과 클라이언트와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이제는 알만큼 알아버렸으니까요.

지난 주 제주도교육청이 이석문 교육감 취임 1주년 설문조사를 발표한다는 기사와 보도자료를 접한 제게 이른바 느낌적인 느낌(?)’ 왔습니다. 유사사례를 찾기 힘든 ‘피평가기관이 의뢰한 설문조사’ 공개, 한 차례 발표가 아닌 4회에 걸친 분할 공표, 마지막 날 공개되는 ‘IB 도민 찬반조사’ 등등 말이죠. ‘아! 무슨 시나리오가 있겠구나. 장난치려는구나’하고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더군요.

일단 길게 설명하지 않고 간단히 결과만 말씀드리겠습니다. 6월 27일 <도민 73.5% 아이 행복 위한 최우선 요소로 인성이라 답해> 7월 2일 <도민 53.5% 이석문 교육감 직무수행 긍정 평가>, 7월 3일 <도민 54.3% 도내 학교교육에 만족한다>, 그리고 마지막인 4일 <도민 69.2% IB 교육프로그램 도입 필요하다>입니다. 뜬금 없겠지만 원희룡 제주도정이 취임 1주년 여론조사를 이런 방식으로 발표했더라면 어떤 비판을 받았을지 궁금합니다?

지난주 저는 칼럼을 통해 조사 대상에 대한 공정성 문제와 함께 설문 문항에 특정 답변을 유도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교육행정 서비스의 최종 수요자인 학생들과 학부모가 조사의 중심이 아니라, 마치 선거여론조사 하듯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된 조사이기 때문입니다. 교육현안에 대한 관심과 이해관계를 놓고 봤을 때 초중고생인 10대와 대학생인 20대, 학부모 세대인 3,40대와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50대 이상을 같은 조건으로 보고 비교해서는 안된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제주도교육청이 모든 4회에 걸친 설문조사 보도자료를 배포한 4일 이후 모든 전후관계와 맥락이 좀 더 선명해졌습니다. 교육청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설문문항을 모두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모두 13개 문항에 걸쳐 설문이 구성됐고, 제가 살펴본 결과 IB 교육에 대한 찬반 의견과 이유를 묻는 2개 항목을 제외하고는 문항간 연계성이 전혀 없는 질문입니다.

마지막으로 IB 찬반을 묻는 질문은 더욱 가관입니다. 솔직히 시사프로그램을 준비하며 IB에 대한 자료를 찾고 공부를 했던 저 역시 아직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IB에 대한 이해도 확인도 거치지 않고 도민들에게 찬반을 물어본 겁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최근 제주도교육청은 IB 교육프로그램 도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자기 주도 학습과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찬성하는 의견과 IB 교육을 거친 학생이 한국의 주입식 대입을 치르는 데 어려움과 평가결과에 대한 공정성 확보 우려 등으로 반대하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님께서는 IB 교육프로그램 도입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혹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IB에 대해 ‘자기주도학습과 공교육의 질을 높이지만 주입식 대입을 치르는데 한계가 있고 평가결과에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정보를 응답자에게 심어준 셈입니다. 이 질문에 포함된 ‘주입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가치중립적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장점에서 대한 이유는 가장 긍정적이고 좋은 요소를 같다 붙인 반면, 부정의 이유에는 지나치게 부수적인 요인을 끌어와 내세우고 있는 셈입니다. 질문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이죠. 부정의 이유 앞에 ‘과도한 예산 투입’이나 ‘학교 서열화’, ‘공교육 현실적 적용 불가능’을 대입했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관련해서 주목할 여론조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KBS제주방송총국이 3 보도한 내용인데요. 긍정이 45.3%, 부정이 27.9%로 나왔습니다. 헌데 긍정과 부정의 비율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긍정’과 ‘부정’에 대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이 교육감이 지난 1년 이룬 가장 큰 성과가 무엇인지 묻자 49.3%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역으로 미흡한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46.6%가 잘 모른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이 쯤되면 긍정 또는 부정 응답이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즉흥적인 것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간혹 자신의 정책추진을 강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여론조사를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라면 이런 ‘비교육적’ 작태는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왜 설문조사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제주 지역 언론이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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