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위기? 경제진단 누구말이 맞는거야

같은 데이터도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게 마련입니다. 흔한 사례로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네’와 ‘물이 아직도 반이나 있네’ 정도가 있죠. 단순한 부분들의 총합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사건의 일련과정 등 주변의 맥락까지 온전히 녹여야 비로소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겠죠.

그 가운데 특히 경제는 대상의 층위가 깊고 변수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결론을 도출하거나 전체를 파악하기 더더욱 어렵습니다. 하나의 단면이나 데이터만 보고 전체를 그려낼 수 없다는 점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경제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와 시청자들은 언론에게 ‘단순’한 관점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이 기사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데이터가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이야, 아님 나빠졌다는 말이야” 처럼 말이죠. 변명처럼 비춰지겠지만 그 결과 언론의 입장에서는 경제기사를 간단히 쓰고싶은 유혹에 빠질수 밖에 없습니다.

‘단군 이래 우리나라의 경제가 좋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경험적으로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을겁니다. 실제 현상이 어떤지를 떠나 독자를 자극하는 ‘부정적’ 유형의 기사가 팔리는 현상을 꼬집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전국지나 지역지 역시 이런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그런면에서 호남지방통계청 제주사무소가 지난 21일 발표한 <2019년 2분기 경제동향> 발표자료는 경제를 다루는 언론의 모습을 비추는 단적인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통계청의 자료는 어떠한 ‘결론’이나 ‘전망’을 내놓지 않는 그야말로 드라이(dry)한 자료입니다. 광공업과 서비스, 소매판매와 건설, 수출입, 물가와 고용, 인구이동의 분야에 걸쳐 특정 시기 동안의 증감을 비교하는 자료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는 ➀ 올 2분기 제주 지역 광공업생산은 전년동분기 대비 6.7% 감소했고, ➁ 소매판매는 전년동분기 대비 7.2% 증가, ➂ 건설수주액은 25.2% 증가, ➃ 수출액 30.2% 감소, 수입액 50.0% 감소, ➄ 고용률 68.5%로 변동없음, 실업률 0.9%p 증가와 인구 1,390명 순유입이 전부입니다. 부문별 총생산액이 제시된 것도 아니고 가중치 부여로 지역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언론보도는 가지각색입니다. 한라일보는 <생산·수출 부진 속 건설은 호조 ‘희비’>라고 전했고, 제주신보는 <일자리 없어 노는 20~30대 늘어>, 제민일보 <제주 경제 올해 2분기 악화 지속>, 제주일보 <생산·수출 부진..‘침체의 늪’ 깊어지나>로 각각 제목을 뽑았습니다.

한라일보는 부문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는 식의 드라이한 보도를, 제주신보는 부문별 생산액보다는 아예 고용동향 하나만 파고 들었습니다. 반면, 제민일보와 제주일보는 광공업총생산액과 수출 감소 등 2~3개 지표만 가지고 제주경제의 위기를 선언한 것입니다. 추이분석이나 실물경제에 대한 사례 제시도 없이 지금의 경제를 진단한 다소 위험한 시도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건 세계적인 석학이나 경제학자들도 하기 힘든 예측입니다.

제주신보 8월 22일자 지면 캡처
한라일보 8월 22일자 지면 캡처
제민일보 8월 22일자 지면 캡처
제주일보 8월 22일자 지면 캡처

플라시보(placebo) 효과(위약)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소화제를 감기약으로 알고 복용했는데, 실제 약효가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현상과 대상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심리상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일 겁니다. 플라시보의 반대 경우를 바로 ‘노시보(nocebo) 효과라고 하는데요.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처럼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차 부 정적인 메세지를 계속 수용하다보면,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될 겁니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 합니다. 부정적인 기사는 모든 경제주체들의 보수적인 결정(소비와 투자위축)을 자극하게 되고, 결국 공동체의 역동성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기사가 신중해야겠지만 그 가운데 특히 경제가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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