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외롭지 않은 자리

“장관 중에서 환경부 장관만큼 외로운 자리가 또 있을까? 모두가 경제 살리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국무회의에서 홀로 감히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자리, 환경파괴가 염려되는 개발 계획에 분연히 반기를 들어야 하는 자리…”

최재천, <환경부 장관이라는 자리> 조선일보 2018. 6. 12

최소한 10년을 바라봐야 한다. 5년이라는 짧은 대통령 임기 안에는 성과를 내보려 해도 도저히 티가 나지 않는 부처가 바로 환경부다. 태생적으로 고독한 부처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혼자만 ‘노’라고 말해야 한다. 규제의 부처인 환경부는 그렇게 정부 안의 ‘야당’이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차라리 욕을 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다. 박원하 제주도 환경보전국장에게 “환경보전국이 도시건설국이냐, 관광투자국이냐”하는 냉소가 투척됐다. 21일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에서 속개된 <보전지역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안> 심사에서 박 국장이 개정안 추진에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이미 있는 상황에서 보전지역 1등급 지구 해제를 위해 도의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개정안은 과잉 규제”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호미로 막을 것을 왜 가래로 막으려는 것이냐’는 항변인 셈인데, 사실 그동안 호미가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 이미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삽을 뜨기 시작한 도내 수십개의 대형 개발 사업장에서 환경 문제가 속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국장의 환경영향평가 ‘만능론’은 계속 됐다. 아니 이 정도면 작정하고 싸우러 나온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했다. “아무 개발행위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라고 빈정거리는가 하면, “조례 개정안을 인정할 수 없다”,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에서 객관성을 결여한 조례안”이라고 작심 발언했다.

고경실 전 제주시장 당시에 시청 청정환경국장을 역임하며 ‘요일별 배출제’ 실무를 진두지휘한 장본인이 바로 박 국장이다. 2017년 모 신문에서 “요일별 배출제 정착으로 청정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이 보기 민망했다. 이래서 ‘영혼이 없는 직업’이라는 냉소를 듣는구나 싶었다. 적어도 직장 내에서 외롭지는 않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박 국장의 ‘일당백’ 전력투구 덕분이었는지, 조례안은 표결을 통해 4대 3으로 가까스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내일(22일) 본회의에 상정해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을 받으면 그대로 통과한다. 그렇다고 제주도가 그냥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재의요구를 통해 김을 빼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개발만큼 보전 역시 중요한 가치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개발 행위가 최소한 몇 세대를 뛰어넘어 어떻게 작동될지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할 일도 아니다. 공무원의 ‘혜안’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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