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칼럼] ‘어쩌다’ 30만원 재난지원금…철학도 없고 감동도 없다

개콘보다 재미있는 장면 몇 가지를 최근 목격했다.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기록으로 남길 필요도 있을 것 같아 정리해 둔다. 제주도교육청 얘기다.

먼저 첫 번째 장면이다. 이석문 교육감은 지난달 24일 교육행정질문 자리에서 코로나19로 발생한 2% 가량의 불용 예산으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지원 방식이나 액수는 말하지 않았지만 몹시도 궁금했던 어느 기자가 직접 계산기를 두드린 모양이다. 교육 총예산 1조 2300억원에 0.02를 곱해 246억원이라는 수치를 1차로 뽑았고, 이걸 다시 도내 초중고 학생수 7만 8000으로 나누니 얼추 ’31만5184원’ 정도가 나온 모양이다. 그렇게 ‘1인당 30만원 정도 지원 전망’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지만 이후부터 일이 커졌다. 한 용감한(?) 언론이 <이석문 교육감 “1인당 30만원 지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노출했다. 교육감이 아예 직접 30만원씩 주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취지로 제목이 뻥튀기됐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파격의 기사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퍼졌고, 따라 쓰는 오보 역시 무서운 속도로 확대 재생산되며 ‘1인당 30만원 지원’은 기정사실처럼 굳어갔다. 이 교육감 본인도 신이 난 듯 고무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해당 내용을 자신의 SNS에 게시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장면. 누구도 바로잡지 않은 대형 오보 사태(?)는 28일이 되어서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보고 자리에서 언론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순문 교육청 정책기획실장이 답변했다. 교육행정질문 직후 오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나흘 가량이 지나서야 언론의 해석이 과도했다고 얼버무린 것이다. 교육감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오보라며 일축하는가 싶었는데 이내 1인당 30만원 지원이 확정됐다. 강순문 실장이 지난 11일 추경안을 발표했다. 바야흐로 세 번째 장면인 셈이다. 교육감의 ‘면’을 살리기 위해 예산을 억지로 맞췄다는 뒷말이 무성했지만 얼떨결에 ‘1인당 30만원’의 약속을 지킨 셈이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원금 사업은 ‘학교 밖 청소년’이 대상에서 제외된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금 논란을 키웠다. 학교 밖 청소년은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는 교육청의 경직된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18일 네 번째 장면에서 다시 강순문 정책기획실장이 도의회에 등판했다. ‘도청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다. 교육청도 지원하고 싶지만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 못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강시백 위원장은 법령 검토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상임위는 이튿날 ‘학교 밖 청소년’도 지원금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수정 예산안을 예결위로 넘겼다. 위법 운운하던 교육청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해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얼떨결에 학생 1인당 3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지만 뒷맛은 찜찜하다. 사업의 주요 고비마다 교육당국은 정책의 실효를 높일 수 있는 철학의 부재를 고스란히 노출했고 시대적 요청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거기다 타이밍까지 놓쳤다. 감동이 없으니 생색조차 내기 어렵게 됐다. 전국 최초 ‘고교 무상급식’과 ‘무상 교복’ 등 이른바 복지 공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이석문 교육감이 이번은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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