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칼럼] 행정체제 개편, 서귀포시민은 들러리인가

제주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점점 기형적인 길로 빠져들고 있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3개 시 체제’라는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의회는 새로운 여론조사를 추진하며 도민 사회를 다시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은 서귀포시민의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홍명환 전 도의원은 최근 SNS에서 행정체제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오영훈 도지사와 위성곤 국회의원을 ‘서귀포시 정치인’이라는 점을 굳이 거론하며, 행정체제 개편 추진의 배경에 지역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더구나 몽골 시대, 일제강점기까지 끌어와 억지스러운 논리를 덧붙이며 설득력은 오간 데 없고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동기를 의심하고 색깔을 덧씌우는 낡고 위험한 방식이다.

어제(18일)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도민 토론회에서도 씁쓸한 장면이 이어졌다. 패널로 출연한 김종현 사회적 기업 섬이다 대표는 ‘제주시 분할 문제를 도민 전체가 아닌 제주시민의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현장에서 워딩을 들으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영향을 받는 것이 제주시민들이기 때문이라는 김 대표의 논리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서귀포시민의 목소리를 뒷전으로 미루는 결과를 낳는다. 기존 제주시를 둘로 분할하는 문제라고 해도, 그 여파는 재정 배분, 행정 서비스, 정치적 대표성 등 서귀포시민의 삶과도 직간접적으로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귀포시민을 ‘실질적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건 ‘또 다른 배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2005년 행정 구역 개편 과정에서 ‘혁신안’ 반대가 높았던 옛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제주특별자치도 체제에 편입되는 대신 기초자치단체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번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무르익을 무렵 특정 ‘프레임’이 덧씌워졌다는 점이다. 애초에 제주도민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의제를 김한규 의원이 ‘제주시 쪼개기’라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규정하면서 논의의 초점이 왜곡됐다. 그 결과 행정체제 개편은 도민 전체의 미래가 아니라 제주시 분할이라는 좁은 쟁점으로만 소비되고, 지역 간 갈등을 자극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말았다.

서귀포시민은 결코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들러리가 아니다. 제주의 균형 발전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주체다. 특정 지역을 배제하거나 출신을 문제 삼는 방식은 도민 사회의 통합을 해치는 가장 쉬운 길이자, 가장 위험한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있는 리더십과 성숙한 팔로우십이지, 지역을 갈라치고 책임을 떠넘기는 구태가 아니다. 서귀포시민이 제대로 존중받는 논의가 재개될 때 비로소 진정한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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