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칼럼] KCTV 사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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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과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우분들께 이 글을 전합니다. 보도국 기자로 2006년 입사해 2010년 퇴사했으니 올해로 정확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서른한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 지엄한 보도국의 분위기에 압도돼 어리숙하던 입사 초기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새벽마다 경찰서와 소방본부를 찍는 ‘조근’을 돌았고 ‘그림’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에도 사건 현장에 달려가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랐습니다. 밑줄 치며 신문을 읽었고 취재의 ABC와 출입처, 타 언론사와의 관계 설정 등을 차근차근 충실하고 치열하게 배워나갔습니다. 한 명의 기자로 성장하고 있는 제 모습에 내심 뿌듯한 시절이었습니다. A4 종이 쪼가리와 취재 수첩에 볼펜을 끄적이며 기사 한 줄을 겨우 채우던 어느 날, 데스크에게 건네받은 노트북에 울컥했고, 이제야 ‘받아들여졌구나’하는 안도감에 눈시울이 찡했던 기억입니다. 보란 듯 우리 회사를 제주 최고의 언론으로 우뚝 세우리라 분기탱천한 시절이었죠. 혹시나 제가 기자로서 좋은 점이 남아 있다면 모두 이 시기에 배운 것이겠죠.

조근하며 매일 들렀던 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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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송국이나 신문사는 광고국 관계자가 보도국이나 편집국을 함부로 출입하지 않는다던데 우리 회사는 좀 분위기가 달랐던 모양입니다. 한 영업국 간부는 저더러 회사 상품에 가입하지 않은 5명의 명단을 적어서 제출하라고 요구했고(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의 영업실적으로 올렸더군요), 또 다른 기획관리국 간부는 저에게 정말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 아주 기대가 크다는 말을 회사 복도에서 연발했습니다. 친근함의 표시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습니다. 보도국 사무실을 저인망 훑듯 다니며 기자 한 명 한 명과 대화를 주고받는 그의 모습은 친근함보다 ‘정보경찰’을 보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목격하며 회사도 결국 정치하는 곳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회사는 디지털 전환 작업을 마무리하고 ‘닥시스’라는 초고속 인터넷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방문객 견학을 위해 지하에는 디지털 체험실이라는 것도 구비하더군요.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멋진 회사임이 분명했지만 방송장비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편집기 헤더에 말썽이 생겨 테이프를 씹어 먹는 상황이 자주 일어났고(녹화 또는 녹음된 내용을 모두 날려버리는), 내구연한을 초과한 것으로 보이는 ENG 카메라와 핸드 마이크, 썬건 등등 여타 방송 장비들도 말썽의 연속이었습니다. ‘좋은’ 뉴스가 우선이 아니라 사고 안 나는 ‘안전빵’ 뉴스가 우선이었습니다. 장비를 교체해줬으면 했지만 회사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돈을 많이 써서 이쪽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나 보다 넘어 갔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기자질’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걸핏하면 테이프를 씹던 추억의 편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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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어느 날 전체 회의에서 IPTV 사업 진출을 선언한 KT를 회사의 주적이라 규정했습니다. 사무실 곳곳에 ‘박살 KT’ 같은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회사의 주 5일 근무제 전면 도입도 없던 일이 됐습니다. IPTV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며 모든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각서를 썼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상기하기 위해 모든 직원이 토요일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습니다. 한 달에 1건 이상의 인터넷 가입자를 유치하지 못한 직원 명단이 식당 입구에 붙었고, 보도국 뉴스는 KT를 정조준했습니다. 닥시스 제품을 홍보하는 리포트를 내보냈다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적발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기자로서 문제를 제기하며 따질 법도 했습니다만, 이미 몇 차례 논란으로 학습된 무기력감은 현실과의 타협으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서귀포지사가 영업을 위해 취재 인력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서귀포시에 살고 있는 제가 출입처를 옮겼고, <읍면동이 달린다>라는 기획 리포트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읍면동의 특색사업을 소개한다는 취지인데, 인터뷰 대상으로 반드시 해당 ‘읍면동장’과 ‘주민자치위원장’을 등장시켰습니다. 인터뷰가 끝나면 저는 어김없이 주민센터에서 사용 중인 교육용 PC 인터넷 얘기를 꺼냈고, 이를 KCTV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기분 좋게 인터뷰 끝내고 기자가 부탁하는데 누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것 때문이었구나’라는 찜찜한 표정의 모 주민자치위원장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십중팔구 전환을 약속했고 저는 인터넷 영업에 목마른 보도국 동료들의 희망이 됐습니다. 자존심이 거세된 기자가 영업에 욕심을 내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스스로 증명한 셈입니다. 회장이 직접 저에게 격려 전화를 했고, 우수 사원상까지 받았습니다.

특종 말고 영업 잘해서 받은 우수사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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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기레기’라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세상이 됐다지만 ‘기레기’를 꿈꾸며 언론계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회사를 나와 지금은 1인 미디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전직 KCTV제주방송 기자’로 소개되는 제 이력을 볼 때마다 ‘질긴 인연’에 헛웃음이 나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달 <미디어오늘>을 통해 회사에 관한 기사를 접했을 때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 제품 강요와 종교적 편향 같은 나만 알고 있던 회사의 치부가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에 솔직히 약간은 고소하기도 했습니다만, 더운 여름날 급하게 탄산음료를 들이켠 것처럼 시원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운 문화를 방조한 한때 내부자로서의 양심까지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죠.

조용하게 끝나나 싶었던 <미디어오늘>의 보도를 지난 이틀 동안 KBS와 제주MBC가 받아 도민 사회 논란이 증폭됐고, 결국 공성용 회장이 대도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회사 문화를 만들고 노사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약속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들더군요. 지극히 상식적인 이 말을 하기 위해 25년이 걸렸구나, 그동안 회사를 나간 많은 사우들은 지금 이 소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지더군요.

KBS 뉴스 화면 캡처

저는 공 회장님의 선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대도민 사과를 한 만큼 30일이 걸리든 30개월이 걸리든 KCTV제주방송은 선진적인 노사 관계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나아갈 것입니다. 그 분은 한다면 하니까요. 하지만 기업경영이라는 환경이 단지 ‘선의’에 의지하기는 허점이 많습니다. 사주 말고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KCTV제주방송의 구조적 한계가 그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회사가 더욱 내부 단속에 주력할지도 모릅니다. 벌써 구체적인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기우이길 바랍니다. 사우 여러분은 회사의 성장에 충분한 감사와 성과를 나누고 지금까지의 잘못된 관행에 사과를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어쩌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십시오. 노조가 당장 큰 혜택은 줄 것이라는 확신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좋은 동료가 여러분을 떠나는 것은 막아줄지 모릅니다. 사우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제주MBC 뉴스 화면 캡처

One comment

  1. 당신이 왜 회사를 떠나게 됐는지 당신의 치부에 대한 언급은 1도 없네요
    쪽팔린줄 안다면 이런 글 싸지르기 전에 자신의 과거나 먼저 반성하길 ㅉ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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