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칼럼] 동바의 추억

‘동바’는 동네 바보의 줄임말이다.

유전이나 환경적인 이유로 또래에 비해 지능이 떨어지거나 행동이 느린 경우가 많은데,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마을마다 ‘동바’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 명씩은 있었던 기억이다.

‘동바’가 어디에 나타났다고 소문나면 아이들은 그곳으로 우르르 달려갔고(또는 피해 갔고), 요즘은 상상하기 조차 민망한 장난과 린치를 그에게 가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거리’가 부족했던 당시 우리들에게 ‘동바’의 일거수일투족이 흥미로운 대상임이 분명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단지 어린 시절 장난이라 하기에 부끄러운 일이 분명하다.

다행히 사회가 성숙해지고 사람들의 주머니가 넉넉해지면서 나라는 ‘동바’를 배려할 여유를 찾았다. 그들은 이제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도 있고, 일자리도 구할 수 있게 됐다. 갈 곳이 없어 돌봐줄 곳이 없어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고 있던 ‘동바’는 자취를 감췄다.

성인이 되고 난 후 한동안 ‘동바’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가 우연히 중국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루쉰’의 <아큐정전>을 읽었다. 주인공인 ‘아큐’가 바로 ‘동바’인데, 지금까지 내가 기억했던 ‘동바’와는 조금 다른 이미지라서 신선했다.

한마디로 ‘아큐’는 마을의 대표적인 민폐다. 자기보다 약한 부녀자는 희롱하고, 깡패들에게 시비를 걸다가 얻어맞기 일쑤다. 그는 ‘정신승리’(저들은 주먹으로 내 얼굴을 때렸지만, 나는 얼굴로 저들의 주먹을 때렸다와 같은)로 자신의 곤궁한 상황을 부정하고는 한다. 그러면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얼마나 넘치는지, 걸핏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 모두가 그를 피하게 된다.

최근 제주도의회 강충룡(국민의힘, 송산·효돈·영천) 의원이 “대한민국 환경단체들이 돈을 대부분 중국에서 받는다.”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단지 구설이 아니라 힐난이나 비아냥의 수준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환경단체로부터 ‘무지몽매’하다는 거센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발언이 잘못 전달됐다고 그는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강 의원의 황당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도정질문 자리에서는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육지에서 내려온 반대 전문가들은 제주를 떠나 달라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논란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동바’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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