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안전 이유로 학교 의무 대상 제외… 제주만 역주행?
– 2020년 이전 사례 들먹이며 ‘도내 최초’ 홍보
– 10억 투입된 한림항공우주고 ESS…단톡방 폭로로 커지는 의혹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지난 3월 한림항공우주고등학교에 도내 학교 최초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며 ‘친환경 에너지 학교’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취재 결과, 해당 시설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전상의 이유로 설치가 권장되지 않는 시설임이 드러났다. 특히 2023년 이후 전국적으로 학교 내 ESS 설치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제주도교육청이 왜 유독 무리한 추진을 강행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 법은 ‘하지 마라’ 교육청은 ‘하겠다’… 상식 밖 행정?
정부는 지난 2023년 8월 1일,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개정 시행하며 적용 면적과 전력 사용 규모를 완화했다. 특히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는 ESS 의무 설치 대상 공공시설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명시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잇따른 배터리 화재 사고로 인해 대피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머무는 학교에 ESS를 두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ESS는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이기에 화재 발생 시 진압이 어렵고, 다량의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특성이 있다. 학교 외에도 병원과 노인복지시설이 제외 대상으로 함께 명시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한림항공우주고의 경우 계약전력이 최대1950kW이다. 설령 학교 시설물이 규정에 따라 제외 대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의무 설치 기준인 2000kW에 미달한다. 즉, 법적 의무도 없고 안전상 우려로 권고되지도 않는 시설을 교육청이 굳이 자발적으로 학교 내부에 들여놓은 셈이다.
■ 교육청 “다른 학교도 설치”…한국에너지공단 “공식 통계 없어”
제주도교육청은 한림항공우주고 ESS 설치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 등 5개 다른 지역에서 ESS 설치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서울 공항고(2017년), 충북에너지고(2018년), 울산에너지고(2018년) 등 일부 학교의 ESS 설치 사례가 확인된다. 그러나 이는 모두 ESS 화재 위험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전인 2020년 이전의 상황이다. 당시에는 정부의 장려 정책에 따라 시범적으로 도입됐으나, 이후 안전성 문제로 인해 전국적인 확대가 멈췄고 급기야 법령 개정을 통해 학교가 제외되기에 이르렀다.
주무 부처인 한국에너지공단에 문의한 결과 “학교는 필수 시설이 아니기에 공식 통계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국가 에너지 정책 기조에서 학교 내 ESS는 더 이상 권장되거나 관리되는 영역이 아님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도 설치 사례가 있다며 이미 동력을 상실한 과거 사례를 내세워 안전 위협과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현재의 무리한 사업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 막대한 혈세 투입… 안전 우려에도 설치 학교 늘릴 듯
한림항공우주고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태양광 발전 설비와 ESS를 포함해 약 10억 원 규모다. 태양광 독식 논란 제기된 업체가 ‘우수조달물품’ 제도를 통해 사업을 따냈다. 도교육청은 한림항공우주고 외에도 신설되는 가칭 아라월평초중학교에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소규모 특수학교인 영지학교 분교장도 향후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ESS 용량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건마다 수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태양광 발전 설비와 유사하게 해당 업체가 우수조달제품 제도를 통해 손쉽게 수주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도교육청은 에너지 절감과 탄소중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인 전기요금 절감 효과가 투입 예산 대비 얼마나 클지 역시 미지수다. 오히려 화재 예방을 위한 추가적인 관리 비용과 안전 장비 확충 등 ESS의 가격 구조를 고려하면 경제성 측면에서도 낙제점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ESS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가 전체 비용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고비용 설비로, 최근에는 연이은 화재 사고로 인해 소방 및 공조 시스템 등 안전 설비 구축 비용까지 급등하며 초기 투자비 부담도 더욱 커졌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지금이 역대급 세수 결손으로 인해 교육교부금이 급감한 교육재정 절벽 시기라는 점이다. 일선 학교의 기초학력 지원 예산과 노후 교실 개선비까지 삭감되는 마당에, 법적 의무 대상도 아닌 ESS에 수십억 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것은 재정 운영의 우선순위를 망각한 처사다.
ESS는 설치 후 10~15년이 지나면 효율 저하로 인해 초기 설치비의 절반 이상을 들여 배터리를 전면 교체해야 한다. 연간 전기요금 절감액으로 15억 원의 투자비를 회수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리는 구조임을 고려하면, 결국 이번 사업은 ‘에너지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도입돼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든 이미지입니다.
■ 업체 대표의 ‘수상한’ 카톡… ‘카르텔’ 의심 솔솔
KBS의 지난 6일 보도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 사업 독식으로 유착이 의심되는 업체 대표 A씨는 임직원 단톡방에서 도교육청의 예정에 없던 배려로 ESS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김광수 교육감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교육청의 무리한 ESS 사업 확대가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한 특혜의 결과물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박약하고 전국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사업에 십수 억 원의 교육 예산이 투입된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이나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홍보에 가려진 학생 안전…투명 공개 목소리 커질 듯
제주도교육청은 3월 당시 보도자료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전기요금을 절감하고 학생들에게 탄소중립을 체감하게 하는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위기에 봉착한 교육 재정의 효율적 운용보다 에너지 절감 수치를 우선시하는 행정이 과연 교육적인지는 재고해봐야 할 대목이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에너지 설비 도입으로 보지 않는 도민들의 의구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의무 대상도 아닌 학교 시설에, 그것도 전국 최초라는 위험한 타이틀을 달고 강행된 ESS 설치 사업의 결정 과정 전반에 대해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