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서식하는 박쥐가 한겨울에도 기온이 높은 밤이면 겨울잠에서 깨어 먹이 사냥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겨울철 내내 동면을 이어가는 한반도 내륙 박쥐와는 다른 모습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 동굴 박쥐 생태조사’ 학술용역의 중간 분석을 통해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내 구린굴·평굴과 관음사 계곡 일대 박쥐의 겨울철 간헐적 먹이활동과 계절별 서식지 이용 특성을 확인했다.
이번 조사는 2023년부터 이어온 한라산 장기 생태모니터링의 연장선으로, 서식지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박쥐를 직접 포획하지 않고 생물음향 모니터링과 현장조사를 병행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2023~2025년 자료를 같은 기준으로 재정리해 비교·분석했다.
관음사 계곡에서 기록된 박쥐 초음파를 분석한 결과, 먹이를 잡을 때 내는 ‘먹이활동 신호(feeding buzz)’가 12월에는 비교적 빈번했고 1~2월에도 기온이 높은 밤을 중심으로 산발적인 활동이 확인됐다.
온화한 해양성 기후에 사는 제주 박쥐가 겨울에도 일시적으로 깨어나 먹이활동을 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진은 기온과 박쥐 활동을 장기간 함께 기록하면 기후변화에 따른 동면기간과 먹이활동 시기의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는 생태지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동굴과 계곡을 다르게 쓰는 특성도 확인됐다. 동굴은 겨울잠을 자거나 새끼를 낳아 기르는 공간으로, 인근 계곡과 숲은 먹이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굴은 겨울철 관박쥐가 최대 약 1,900개체까지 모이는 주요 동면처였고, 구린굴은 봄·여름철 관박쥐·긴가락박쥐·큰발윗수염박쥐가 최대 약 1,500개체까지 모여 새끼를 낳고 기르는 출산·포육 장소로 확인됐다. 인근 관음사 계곡과 산림은 이들의 주요 먹이터로 이용됐다.
이 결과는 박쥐가 동굴과 계곡·산림을 오가며 하나의 생태적 연결망을 이룬다는 뜻으로, 동굴뿐 아니라 주변 계곡과 산림도 포함한 보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유럽 박쥐종 중심의 자동 식별 알고리즘을 국내 박쥐 음향자료와 현장조사 결과로 보정하고 있다. 아울러 먹이활동 신호의 빈도로 취식지 이용 강도와 서식지 상태를 비교할 수 있는 정량 지표를 마련할 예정이다.
세계유산본부는 용역이 끝날 때까지 계절별·종별 음향자료와 동굴의 온도·습도, 외부 기상자료를 종합 분석할 계획이다.
최종 결과는 동면과 출산·포육 등 박쥐가 민감한 시기의 동굴 관리방안과 동굴·산림·계곡을 잇는 보전관리 체계를 세우고, 국내 박쥐 음향분석과 장기 모니터링 기준을 구축하는 데 활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