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빼고 ‘제도개선’ 간담회?…우수 제품 하소연에 본질 흐려져

도내 우수조달물품 및 혁신제품 보유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겠다며 제주도의회가 마련한 소통 간담회가 반쪽 행사이자 논점 흐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공조달 제도 개선을 논하는 자리에 정작 주무 관청인 조달청은 빠진 채 예산 집행 기관만 불러 모아 구매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감 선거 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태양광 업체의 논란까지 지역업체 역차별 프레임으로 희석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미래경제산업위원회 소속 양경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노형동 갑)은 31일 오후 도의회 대회의실에서 <도내 기술 개발 기업의 판로확대 및 제도개선을 위한 소통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자리에는 도내 16개 기술개발기업 대표자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공공기관 납품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업들은 공무원들이 감사 지적을 우려해 타 지역 대기업 제품을 선호한다며, 수의계약 문턱을 낮춰줄 것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양경호 의원 역시 교육청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 조례에 명시된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에서 ‘노력’을 삭제해 구매 목표 달성을 의무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기업들의 요구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간담회의 구성과 형식을 두고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명색이 공공조달 제도 개선을 위한 간담회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계약 법령과 조달 제도를 총괄하는 조달청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도내 관급 공사와 자재 구매 예산을 쥐고 있는 제주도청과 도교육청의 행정국장 등 예산 집행 책임자들만 출석했다. 제도를 고칠 권한이 없는 발주처 국장들을 간담회 자리에 앉혀두고 납품 업체들이 집단으로 민원을 쏟아내는 구도가 연출되면서, 사실상 수의계약 물량 확대를 압박하는 청탁성(?) 멍석말이 자리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이날 간담회의 흐름이 최근 도민사회를 흔들고 있는 특정 관급자재 독점 사태의 본질을 교묘하게 흩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간담회에는 교육청 학교 태양광 사업의 80% 이상을 독식해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선 업체 대표도 참석했다. A 대표는 조달우수 인증 유지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기술개발 제품 구매 시 공무원들이 작성해야 하는 수의계약 사유서를 배제하고 감사위원회의 지적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업체들이이 직면한 수의계약 독점 논란을 공공조달 제도의 불합리함과 공무원들의 소극 행정 탓으로 돌린 셈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학교 태양광 수의계약 독점 사태의 핵심은 우수조달제도의 한계나 지역업체 역차별이 아니다. 특정 업체 관계자가 과거 교육감 선거에 깊숙이 개입해 유착한 정황이 있고, 그에 대한 보은성 대가로 무더기 수의계약 특혜가 주어졌다는 의혹이 사안의 본질이다.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지역 중소기업이 공공조달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판로를 열어주는 것은 도의회와 행정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투명해야 할 제도 개선의 장이, 수사 선상에 오른 특정 업체의 유착 의혹을 제도의 희생양으로 둔갑시키는 물타기 무대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