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대에 추진 중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최종 허가를 내렸다는 소식은 아마 다들 접하셨을 겁니다.
사실 월요일에 제주도가 발표한 ‘금주 중에 결론을 내리겠다’는 보도자료로 어느 정도 예상은 가능했습니다만, 제주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의료민영화에 대한 물꼬를 터준게 아니냐는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가 거센 것 같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이나 국내 의료체계의 특성상 이번 영리병원 허용이 전국적인 공공보건의료체계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원 지사의 말도 완전히 일리가 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개인적으로는 도대체 왜? 원희룡 도지사가 왜? 공론화조사의 불허 권고를 뒤집는 결정을 내렸을까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원 지사의 결정에 무엇이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해하며 기사를 찾아봤는데요…연합뉴스와 노컷뉴스의 분석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먼저, 연합뉴스 기사부터 소개해드리죠. 어제 발표 직후에 분석기사를 출고했는데요. <공론조사 결과 수용하겠다던 원희룡 왜 입장 바꿨나?>입니다. 일단 원 지사의 조건부 허가 배경의 큰 틀로써 ‘대내외적인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부 요인을 분석하고 있는데요. (1) 손해배상 책임과 주민들의 반발, (2) 행정의 신뢰성과 신인도 추락에 따른 대외 이미지 실추, (3) 정부에 대한 섭섭함 등이 이번 허가에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주도가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어, 솔직히 신선함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노컷뉴스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모양입니다. 연합뉴스와 비슷한 시각에 기사를 출고했는데요. <말 뒤집고 신뢰 깬 원희룡 제주지사, 영리병원 허가 왜?>입니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뒤집은 이번 조건부 허가의 큰 그림으로 ‘원 지사의 향후 행보에 대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그리고 있습니다.
노컷은 최근의 정국 상황을 주목했습니다. (1)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와 보수 야권의 결집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 영리병원을 허용할 경우 보수층에 자극을 주고 향후 지지세 확보에 도움이 됐다고 판단한게 아니냐고 보고 있는데요. 반대로 정부와 여권의 지지율이 견고했더라면 원 지사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합뉴스의 분석보다는 노컷의 해석력에 마음이 끌립니다. 보수 정치권 내부에서 원 지사를 향한 푸쉬가 있었을 것이고요, 이에 언론마저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중앙일보는 11월 7일자 신문에 양영유 논설위원의 시시각각이라는 칼럼을 통해 <원희룡이 비겁하다>는 정론지로써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작은 영리병원 하나 허용해주는 것도 두려워하면서 어찌 큰 정치인이 될 꿈을 꾸느냐고 힐난하는 내용인데요. 칼럼 마지막이 이렇습니다. “영리병원=원희룡 꼬리표가 붙을 것을 걱정한다면 원희룡 스토리는 더 진화하기 어렵다. 리더가 결단력이 부족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 원 지사가 새겨야 할 말이다. 안락한 방관으로 제주 도백에 머물텐가, 정면 돌파해 중앙무대 리더 경쟁에 뛰어들텐가.”라고 말이죠.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주간조선 역시 11월 19일자 <외주 맡긴 민주주의>라는 기사를 통해 녹지국제병원 추진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영리병원 허가 이후 자신에게 쏟아질 엄청난 비난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원희룡 지사는 아둔한 인물이 아닙니다. 분명 가능한 많은 변수들을 고려하고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봤으리라 확신합니다.
때문에 이번 영리병원 조건부 허용은 얼핏 봐서는 ‘행정적 허가 절차’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원 지사 본인으로서는 ‘매우 중대한 정치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당장의 도지사의 길보다는 앞으로 자신이 걸어가길 원하는 그곳에 대한 ‘선투자’를 한 셈이지요.
조건부 허용 발표 기자회견을 당초에는 보건복지여성국장에게 떠넘기려다가 본인이 직접 하게 된 것은, 분명 이번 건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일겁니다.
“도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가겠다.”
지난 7월 2일 취임 선서 가운데 가장 힘줘 말한 대목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