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칼의 제주팟 154번째 에피소드 시작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주말과 휴일 편하게 보내셨습니까? 제주 지역 시사 인사이더들의 성지 <고칼의 제주팟> 모두까기 고칼입니다.
혹자들은 원희룡 도지사를 많이 까는 저의 특성을 보시고 ‘네가 무슨 모두까기는 모두까기냐 솔직히 원두까기라고 해라’ 이렇게 질타도 하십니다만…편하신대로 받아들여도 저는 상관 없습니다. ‘모두까지’, ‘원두까기’ 둘 다 어감이 나쁘지는 않군요.
기쁨과 슬픔, 성취와 좌절 등등 다시 많은 감정들이 우리는 기다리는 한 주의 시작점에 여러분과 함께 저 고칼도 섰습니다. 이번주 역시 어떤 소식이 여러분과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데요. 역시나 제가 하는 일이 하는일인지라 아침이면 여느때처럼 지역 일간지 톱기사가 뭐가 올라왔을까 살펴보게 됩니다.
제주신보 ‘4.3 특별법이 여전히 안갯속이다’가 1면 톱기사고요. 한라일보는 남북교류시대 16번째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제주에 거주하는 이북 5도민의 기대와 희망 전하고 있고요. 제민일보는 새로운 관광거점 육성으로 후퇴가 우려되는 제주의 경쟁력을 진단했습니다. 제주일보는 제2공항 절차적 정당성 논란을 판가름 지을 용역중간보고회가 17일 열린다는 소식을
담고 있습니다.
네, 고칼의 제주팟 청취자분들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4개 일간지 1면 톱기사가 아닐까 합니다만….역시나 지역 언론이 관심을 가질 공통의 이슈나 아이템이 없다는 것이겠죠. 여러분은 어느 일간지의 1면 기사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으십니까?
[인서트] 브릿지
지난주 수요일에 4.3 71주년 추념식이 있었죠. 그래서 제가 수요일 에피소드를 일부러 하루 앞당겨서 화요일에 보내드렸던 것 같은데요. 비록 문재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낙연 국무총리나 여야 5당 대표, 정관계 인사들이 많이 찾아신 것 같더라고요.
지난해 70주년처럼 많은 조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만 대량 학살의 당사자인 군경의 공식사과라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는데요.
당시 희생된 분들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조용히 보내려고 했습니다만. 나름대로 이번 71주년 추념식을 바라보며 뭔가 불편한 지점이 생기더군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건데요.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이번 추념식은 철저하게 ‘원희룡의, 원희룡에 의한, 원희룡을 위한 추념식’이었다는 것이 바로 저 고칼의 진단입니다.
물론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이미 원 지사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2008년에 4.3위원회 폐지를 골자로 한 특별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바 있습니다. 이게 논란이 되자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전원이 발의한 것이어서 혼자만 이름을 뺄 수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었죠.
지금 그 얘기를 다시 꺼내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당시 당내 분위기가 어떠했든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 자기 고향의 아픔을 외면한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는 아마 끝까지 따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있죠. 저는 이게 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는데. 박근혜 정부 당시에 추진했던 국정교과서에 제주 4.3에 대한 왜곡된 기술을 담으려고 한다는 움직임이 포착됐음에도 노코멘트로 일관했던 모습…저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이었던 2008년 특별법 폐지 공동발의 당시보다 도지사 신분이었던 지난 2015년 당시의 외면과 침묵이 더 큰 실책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원 지사는 이에 대한 점수를 어떻게든 만회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희생자 유족회와 가까이 지냈고 나름 노력도 많이 했는데요. 70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여년 만의 대통령 공식 참배로 행사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존재감이 그냥 싸악 묻혀버렸죠.
아마 이 때문이었을까요? 이번 71주년 추념식은 단단히 벼르고 별렀던 모양입니다. 왜 ‘원희룡의, 원희룡에 의한, 원희룡을 위한’ 추념식으로 변질됐는지, 지금부터 저 고칼이 그 근거를 제시하겠습니다.
[인서트] CM
우선 첫번째입니다. 이건 미수에 그친 사건입니다만. 제주도가 원희룡 도지사의 얼굴을 4.3 홍보캠페인 영상에 담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과거에라도 4.3 관련 홍보영상에 현직 도지사가 출연한 전례를 보신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공직선거법상 도지사의 광고 출연이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공직선거법 제86조 7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소관 사무나 그 밖의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방송이나 신문, 잡지나 그 밖의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고 말이죠.
실제로 제주도선관위가 원희룡 도지사의 광고 출연에 대해서는 불법이기 때문에 분명히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원희룡 4.3 홍보영상 출연 미수사건’. 꼭 기억해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주목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원희룡 도지사 추념 행사 전면에 부각시키기입니다.
아시는 분 아실테지만 4.3 추념식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 국가추념일로 지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행사의 주최는 어디까지나 행정안전부가 되고요, 제주도는 행정안전부의 의뢰를 받아 추념식을 진행하는 주관기관에 불과하죠. 실제로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주최는 ‘행사나 모임을 주장하고 기획하여 연다’는 의미를, 주관은 ‘어떤 일을 책임을 지고 맡아 관리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장관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굳이 주관기관의 장인 도지사의 인사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가 제주도민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원희룡 지사의 인사말까지는 넣어줬네요.
70주년 추념식에 비해서는 그래도 한 단계 나은 대접을 받은 원희룡 도지사였습니다만 제주도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모든 보도와 홍보의 중심에 우리 원희룡 도지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4월 2일부터 3일까지 4.3 관련 보도자료가 모두 7건이 나왔는데요. 2건을 제외한 5건 자료의 주어가 모두 원희룡 도지사입니다. 제가 소개해드리죠.
<원희룡 지사 “4.3 정신을 인권 평화의 정신으로 이어가자”>라는 전야제 행사 소식을 시작으로, <원희룡 지사 유족들 만나 깊은 공감과 위로 표해>, <국방부 경찰청 4.3 애도 표명에 따른 원희룡 도지사의 입장문>, <원희룡 지사, 동백나무 심기 캠페인 참가>, <원희룡 지사, 특별법 개정 및 희생자 결정 조속히 처리해달라> 등의 보도자료가 나왔습니다.
적어도 제주도정이 바라보고 있는 이번 71주년 4.3 추념식은요, 원희룡 도지사와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보도자료 2개 빼고 모두 원 지사의 추념식 관련 치적과 발언을 담은 보도자료로 도배를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군경의 최고 책임자가 71년만에 공식사과를 하면서 이번 추념식의 성과가 부각됐는데요. 이걸 덥석 낚아챈 것이 바로 원희룡 도지사라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인데요. 절대로 끌어들여서는 안될 정치를 이번 추념식에 올렸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5천명이 훨씬 넘는다고 소문만 무성한 원희룡의 팬클럽..네, ‘프랜즈원’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여기 사람들이 추념식 행사가 끝난 후에 환경정비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5천명이 훨씬 넘는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사진을 보니 참석한 인원은 2,30명 수준인 것 같은데요.
이 분들이 그래도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 사람들인지 티를 내고 싶었나 봅니다. 쓰레기를 주운 후에 단체사진을 찍었는데요. ‘제주 4.3의 아픔, 치유에 함께 하겠습니다 – 원희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현수막을 펼쳐 놓고 기록을 남겼다는 겁니다.
아직 제가 따져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법령 위반 여부를 떠나 좌우를 넘어 제주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어루 만지는 추념식 장소에서 특정 정치인의 이름을 내건 소위 팬클럽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해도 맞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역사의 일부분도 정치의 디딤돌로 활용하려는 이 분들의 놀라운 생각에 그저 무릎을 칠 따름입니다. 원희룡 도지사님은 이 사람들이 그 현장에 가서 이렇게 사진을 찍는 것을 아마 모르셨겠죠.
아시겠습니다만 4월 3일은 바로 경남 창원과 통영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진 날입니다. 물론 지역적으로 제주는 해당이 없어 공직선거법의 적용 가능성은 적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이날 여야 5당 대표가 제주에 총출동한 날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보궐선거 한 자리에 목숨을 건 사람들인데, 하고 싶은 말이 없었을까요? 그럼에도 가만히 계셨죠. 4.3 추념식 행사장은 정치가 함부로 나댈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홍보영상 출연 미수 사건에서 출발해 보도자료 밀어 넣기, 그리고 팬클럽을 이용한 행사장 물타기까지 도민 모두의 비극인 제주 4.3을 어떻게든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맞추려는 원 지사님의 천재적인 마인드는 정말 따라가지를 못하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