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역 민방사업자인 JIBS의 공정방송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자사의 메인뉴스를 통해 대주주의 사업장을 대놓고 홍보해버렸기 때문인데요, 노조가 대표이사 퇴진 등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지난 7일 소위원회 심의를 통해 “뉴스 프로그램에서 자사 최대주주의 관계사인 특정 테마파크의 내외 시설물을 보여주고 증강현실 체험시설 등 서비스의 특·장점을 자세히 소개해 광고효과를 준 제주방송 <JIBS 8뉴스>에 대해 ‘법정제재(관계자 징계)’를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며 “방송사 최대주주의 관계사인 테마파크에 광고효과를 주는 내용을 방송한 것은 방송 편성권을 남용해 관계 업체를 노골적으로 홍보한 것”이라고 제재이유를 밝혔습니다. 권고와 지도와 같은 경미한 처분은 법적 불이익이 없는데 반해 법정제재는 방송평가에서 감점요인이 되며, 심할 경우 방송 재허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JIBS가 지난 3월 30일 종합뉴스 머릿기사로 뽑은 ‘화창한 주말, 나들이객 북적’이라는 제목의 2분 짜리 리포트에는 방심위 소위가 지적한 내용이 그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이와 같은 리포트 유형을 ‘주말(휴일) 스케치’라고 하는데요. 당직 기자가 도내 유원지나 소소한 행사장 등을 돌며 ‘휴일의 평온한 일상을 전하는’ 비교적 가벼운 보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포트에서 기자는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룡 테마파크가 제주에 처음으로 생기면서 지역 경제는 물론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테마파크 신언식 대표이사의 “호텔까지 만들어지게 되면 여기가 명실상부 제주도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는 발언도 리포트에 담았습니다. 정작 리포트의 주제와 어울리는 기사 내용은 단 한 줄, “내일은 기온이 좀 떨어지지만 화창한 날씨가 계속될 예정이어서 봄 나들이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에 불과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언론사가 자사의 사업을 홍보하는 보도(리포트)를 하거나 대표이사 또는 주주와 관련된 사업체의 활동을 단신으로 보도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 건은 누가 보더라도 정도가 심한 케이스입니다. 심지어 보도책임자가 방심위에서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언론비평 매체인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 등의 기사에 따르면 의견진술 자리에 나간 이용탁 보도제작본부장은 “주말 뉴스의 경우 취재기자가 데스크까지 맡는다. 아이템은 당직 기자가 선택했다. 순수하게 기자의 아이템”이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용탁 본부장은 평일 JIBS 메인뉴스의 앵커이기도 한데요. 그러면서 “당시 나도 현장에 있었고, 제목 등을 주의하라고 했다. 보도국장 등이 게이트키핑을 해야하는데 원칙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항변을 내놨다가 위원들로부터 ‘치사하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후배인 취재기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에 일침을 가한 셈이었죠.
이에 JIBS 노동조합이 지난 주 두 차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방송 사유화, 책임자는 즉각 사퇴하라>는 제목의 8일자 성명은 대주주와 경영진, 그리고 간부들로 인해 JIBS 가 전국적인 망신을 당했다”며 “조합은 이미 수 차례 대주주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방송의 공정성 강화, 이용탁 본부장의 자질과 관련한 건에 대해 사측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안일한 대처로 결국 이렇게 전국적인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라고 사측을 성토했습니다. 그러면서 “ 신언식 회장은 각자 대표에서 물러나고 물의를 일으키고도 일선 기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 이용탁 본부장은 즉시 보직에서 자진 사퇴하라”며 “또한 전수조사를 즉각 실시하여 공정방송을 위해 해왔던 방송콘텐츠에 대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비전을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습니다.
13일에는 <신언식 회장은 꼬리자르기 전문인가>라는 제목으로 신언식 회장이 사태를 직접 수습하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재차 요구했습니다. 13일자 성명에 따르면 이용탁 보도제작본부장과 조창범 보도국장은 보직사퇴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조는 “신언식 회장의 책임있는 사퇴와 공정방송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으면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더욱 강력한 심판에 나서겠다”며 총파업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JIBS 노조는 4년 전인 지난 2015년 3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파업에 나서 77일 만에 업무에 복귀한 바 있습니다. 회사가 300억원이 넘는 회사 수익금을 노동자들의 급여와 처우 개선 대신 부동산 구입에 사용했다는 것인데요. 투쟁 끝에 임금 인상과 공정방송협의회 구성 등을 약속받아 민주언론상까지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잠시 파업 이후 단행된 정기인사가 이른바 ‘보복성 인사’ 논란을 낳기도 했는데요. 파업에 참여한 당시 기자협회장을 사업부서로 보내는가 하면, 아나운서는 관리직으로, 기술국 엔지니어를 노무담당으로 전보시키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해 언론계 내부에서 구설을 낳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노사가 합의했다는 공정방송협의회 역시 이번 사태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것이 확인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붙이자면 JIBS는 지난 2014년에는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상임고문으로 임명하려다 반발이 거세지면서 철회한 바가 있고요, 지난 2월에는 박근혜 정부 당시 첫 홍보수석을 지낸 이남기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한 바 있습니다.
‘지금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JIBS가 과거와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 등등 JIBS 구성원 모두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