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殺)과 시(弑), 주(誅)는 모두 사람을 죽인다는 섬뜩한 뜻의 한자어다.
‘시’는 아랫사람이 높은 사람을 죽인 것으로서 ‘시해’처럼 정당하지 못한 일로 분류되는 반면, ‘주’는 죄 지은 이를 죗값으로 죽음에 처하는 것으로 정당한 의미로 사용된다. 반면 ‘살’만이 그냥 죽였다는 중립적인 영역에 속한다.
왕이 인의를 잃거나 폭군으로 변하면 쫓아내도 무방하다는 시대를 뛰어넘은 과격한 역성혁명의 이론을 제시한 맹자. 그는 어느날 “신하가 임금을 시(弑)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인의를 해치는 자를 잔적이라고 하는바, 잔적을 주(誅)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임금을 시(弑)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한다.
유격대와 평화회담을 추진했던 전임자와 달리 4·3 당시 강경진압의 기틀을 마련한 고 박진경 연대장은 자신의 부하인 문상길 중위에게 살해됐다. 각각 육군장 1호, 대한민국 사형집행 1호로 기록된 박진경과 문상길 두 사람의 스토리는 단순한 하극상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온다. 혼란스러운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치부하기에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때문에 감정을 이입하거나 서사를 부여하는 등 스토리 구성에 있어 솔깃한 유혹이 넘칠 수밖에 없다.
<KBS제주방송총국>이 제작해 지난 2일 방영한 <암살 1948>은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라 할 수 있다. 자칫 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경계의 선을 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술이부작(述而不作, 있던 일을 기술할 뿐 지어내지 않음)’의 미덕이라고 할까? 안동 출신 23살 청년의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며 보여줄 뿐,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프로그램의 마무리를 장식한 안상학 시인의 <기와 까치 구멍집>은 그래서 더욱 헛헛하다.
시(弑)와 주(誅), 73년 전 젊은 군인들의 휘말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도 정명을 찾지 못한 4·3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