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 20개 유치 및 육성>은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의 핵심 공약이다. 제주도정은 지난달 19일 "민선 8기의 첫 성과"라며 한 이전 기업의 상장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편중된 제주의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투자와 고용을 이끌어 지역 경제 생태계를 확장할 기업 유치와 육성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도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기업의 역량, 시장성, 지속 가능성, 의지 등을 면밀하게 검증하는 과정 또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에 <제주팟닷컴>은 이번 기업 유치와 상장 지원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6회에 걸쳐 보도한다.
제주도정이 ‘상장기업 20개 유치 및 육성’을 민선 8기의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야심차게 추진해 왔지만, (주)아이엘커누스 사례를 둘러싼 논란은 이 정책이 과연 제대로 설계된 것인지 근본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전기업의 재무·기술·본사 실체 문제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과거 제주 기업 유치 과정에서 반복됐던 ‘부실 검증’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20여 년 동안 제주도가 겪어 온 기업 유치 실패 사례의 구조적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 반복되는 제주 기업 유치의 흑역사
산업 기반이 취약한 제주는 전임 도정 시절부터 대규모 고용과 투자를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기업 이전 유치’ 전략을 꾸준히 활용해 왔다. 하지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공통된 경고 신호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먼저, 키멘슨전자 사태다. 2007년 제조업체 키멘슨전자는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약속하며 제주로 이전했고, 제주도는 각종 인허가 기간을 단축해 주고 재정지원과 세제혜택도 제공했다. 도지사까지 직접 방문해 고용을 독려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할 정도였다. 그러나 회사는 자산 규모와 영업 능력을 크게 벗어나는 무리한 투자를 진행했고, 결국 자금 경색으로 부도처리되면서 수십 명의 도민이 일자리를 잃었다.

모뉴엘 사태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 입주 기업으로서 설비투자 명목으로 보조금 30억원 등 각종 지원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수출 실적을 부풀린 대규모 분식 사기였다. ‘혁신 IT 기업’으로 포장됐지만 실체는 허위였고, 행의 부실한 검증이 도민 피해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2013년 제주로 이전한 온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이 있다. TV 전문 수출 기업으로, LCD 및 LED TV를 주력으로 제조 및 유통하며 한때 제주의 수출 역군으로 꼽히던 기업이었다.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약속했지만, 회사의 실체와 능력 검증이 부족했던 탓에 약속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2016년 파산해 직원들은 실업자가 되고 부지와 사옥을 매각해야만 했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기업은 장밋빛 비전을 제시했고, 행정은 이를 검증 없이 받아들여 성과로 홍보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책임은 모호해졌다.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행정의 답변만 되풀이됐다.

■ 아이엘커누스를 보며 실패 사례가 떠오른 이유
본지가 연속 보도를 통해 확인한 아이엘커누스의 상황은 앞선 사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회사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이며, 기술력은 최신 AI 기업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미미했고, 제주로 이전했다고 밝힌 본사는 비상주형 공유오피스였다. 오영훈 도지사 상장기업 육성 추진의 배경으로 내건 안정적 연봉과도 거리가 멀다. 상장기업으로서 기본적인 경영 기반과 실체가 부족함에도 제주도는 이를 1호 상장기업 유치 성과로 홍보하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행정이 이러한 사실들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에도, 기업 유치와 상장 지원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기술성 검증 요청에는 “심사위원들이 알아서 판단했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반복했다. 정책 목표가 ‘양질의 일자리’에서 ‘상장 숫자 채우기’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가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 공약 실현을 위한 조급함이 낳은 구조적 문제
이번 사례는 아이엘커누스라는 개별 기업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선다. 현재 진행 중인 ‘상장기업 육성’ 정책이 얼마나 취약한 구조 위에서 추진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상장은 양질의 일자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만, 도정은 상장 자체를 목표화했고, 과정을 검증할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했다. 기술성·재무건전성·본사 실체·투자 가능성 등 기본적 요소를 확인하는 절차도 모호하게 운영되고 있다. 최근 상장기업 육성 지원사업 공고에서조차 심사 기준이 완화되거나 모호해지는 정황이 나타났다. 결국 조급한 공약 추진이 또다시 검증 부실을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제주는 이미 여러 차례 부실한 기업 유치로 인해 행정력과 예산, 지역 신뢰를 잃어본 경험이 있다. 아이엘커누스 사례는 이러한 위험이 현재도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정책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기업 실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물론, 재무·기술 평가기준의 공개와 유치 과정의 투명성 확보, 정책의 본래 목적(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정립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불투명한 기업이 ‘성과’로 포장되는 한, 제주 청년들에게 약속된 미래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아이엘커누스는 예외가 아니라, 지금 시스템이 가진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