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행방불명 희생자 7명 신원 확인…3일 보고회 개최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이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결과를 바탕으로 4·3 행방불명 희생자 7명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하고 공식 보고회를 연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은 2월 3일 오후 3시, 2025년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사업을 통해 확인된 4·3 행방불명 희생자 7명의 신원확인보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도외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5명, 도내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2명이다. 도외 희생자들은 4·3 당시 무고하게 대전형무소와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정권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대구형무소 희생자들이 학살된 장소로 알려진 경산 코발트광산 발굴 유해 중 최초로 2명의 신원이 확인돼 의미를 더했다. 대전형무소 희생자의 경우 2023년 1명 확인 이후 이번에 3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도내 희생자 2명은 2007년과 2009년 제주공항에서 각각 발굴됐으나 신원 확인이 이뤄지지 못했으며, 이번에 유전자 감식 기법의 발전으로 뒤늦게 신원이 밝혀졌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송두선 △임태훈 △강두남 △김사림 △양달효 △강인경 △송태우 등 7명이다.

송두선(당시 29세)은 서귀면 동홍리 출신으로 1949년 봄 경찰에 의해 연행된 뒤 행방불명됐다. 조사 결과 1949년 7월경 대구형무소에 수감됐으며, 6·25전쟁 발발 이후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애월면 소길리 출신 임태훈(당시 20세)은 1948년 12월 경찰 연행 이후 행방불명됐다. 1948년 12월 목포형무소 수감 뒤 대구형무소로 이감된 사실이 확인됐고, 역시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강두남(당시 25세)은 제주읍 연동리 출신으로 1948년 10월경 한라산 피난 중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1949년 7월경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전쟁 발발 이후 대전 산내면 골령골에서 희생된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읍 이호리 출신 김사림(당시 25세)은 1949년 2월경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뒤 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 수감 후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읍 도련리 출신 양달효(당시 26세)는 1948년 6월경 행방불명됐고, 이후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차례 면회한 것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희생된 것으로 드러났다.

강인경(당시 46세)은 한림면 상명리 출신으로 6·25전쟁 발발 직후 경찰에 의해 연행된 뒤 행방불명됐다. 모슬포 탄약고 희생설이 있었으나 유해는 제주공항에서 발굴됐다.

제주읍 오라리 출신 송태우(당시 17세)는 1948년 11월 한라산 피난 중 토벌대에 의해 연행된 뒤 수장 또는 제주공항 희생 등 전언만 남아 있었으나, 유해가 제주공항에서 발굴되며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신원 확인은 직계 유족뿐 아니라 방계 유족의 추가 채혈 참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제주도와 4·3평화재단은 김사림·임태훈 희생자의 경우 조카 채혈이, 강두남·강인경·양달효·송두선·송태우 희생자의 경우 손자와 외손자의 채혈이 신원 확인에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확인으로 현재까지 발굴된 426구 유해 가운데 도내 147명, 도외 7명 등 총 15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도 유해발굴 및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추가 채혈을 통해 기존 발굴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동시에, 도외 지역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4·3 희생자를 찾기 위한 유전자 감식도 계속 진행한다.

한편 2026년 4·3희생자 유가족 채혈은 2월 2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제주시 한라병원과 서귀포시 열린병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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