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선거 관리 사태를 빌미로 일부 국민의힘 낙선 후보와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장외 선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들은 사법부의 판결 없이는 불가능한 재선거를 초법적으로 요구하고 나서며 절차적 무지까지 드러냈는데, 도당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고기철 전 제주도당위원장과 재선거 지지당원 일동은 9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적인 투표지 미지급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선거제도 전면 개혁을 요구했다. 이들은 회견을 통해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전국 140개 투표소의 투표지 미지급과 충북 지역 선거인명부 누락(1천296명) 등 광범위한 참정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와 여야 영수회담 수용, 중앙선관위의 해체 수준 전면 개혁, 그리고 사전투표 제도 폐지를 포함한 근본적 개편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기자회견의 핵심은 ‘선거제도 전면 개혁’이 아닌 ‘재선거’에 방점이 찍혔다. 고 전 위원장은 “정부와 선관위는 모든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선거,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당원들과 재선거가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끝까지 목리를 내겠다”고 앞으로의 행보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요구는 현행 공직선거법에 명시된 기본 규정과 절차를 완전히 도외시한 초법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95조(재선거)에 따르면, 재선거는 △당선인이 없거나 임기 개시 전에 사퇴·사망한 경우 △지방의회 의원 정수에 미달한 경우 외에, 이번 사태처럼 선거 절차의 위법성을 다투는 경우에는 반드시 ‘법원(대법원 또는 고등법원)의 선거전부무효 또는 당선무효 판결’이 확정되어야만 치를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선거법상 재선거는 선관위가 자체 조사 후 임의로 결정하거나 행정부가 명령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며, 오직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서만 성립되는 법적 구제 수단이다. 선거법 제222조(선거소송)와 제224조(선거 무효의 판결 등) 역시 규정 위반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때’에 한하여 대법원이 선거무효 판결을 내리도록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앞서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직후 공식 사과와 함께 외부 전문가 중심의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발표했으며, 중앙선관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번 사태를 선거관리 실패로 규정하고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본) 구성을 직접 지시하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태를 진단하고 본질을 따지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가동하고 있는데도 재보궐 낙선 당사자가 우격다짐으로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기자회견 내용이 공당의 라인을 통해 발송되면서 정당 시스템의 사적 동원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제주도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고기철 전 도당위원장이 보궐 선거가 끝난 이후 공식적인 공보 기능이 없으니 도당에 언론사 배포를 요청해 협조한 것뿐”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해당 회견은 도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회견 명의에 포함된 ‘재선거 지지 당원’ 역시 실제 숫자는 미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직도 아닌 전직 위원장의 개인적 낙선 행보와 법적 순서를 무시한 주장을 도당 명의의 공식 채널로 배포하도록 방치한 것 자체가 정당 운영 시스템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행위”라며 “고 전 위원장의 재선거 요구는 명분 없는 낙선 화풀이이자 장외 선동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고 전 위원장은 과거 SNS를 통해 사전투표 불신론을 꾸준히 공유해 왔고, 이번 보궐선거 과정에서도 개인 일정을 이유로 사전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