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참견이 불편한 권력자

– 원희룡 제주지사의 ‘도민 비전문가’ 발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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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4월 황우석 서울대 교수는 사람의 체세포를 복제해 뼈와 간, 심장 등 인체의 주요 조직으로 성장이 가능한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장기기증을 통한 난치병 치유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한 줄기 기대를 건 것은 물론, 대한민국이 세계 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됐다며 온 국민이 기뻐했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흥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해 말 MBC <PD수첩>이 논문조작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황 교수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1월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황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두 차례 발표한 ‘체세포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이 허위라고 결론내렸다.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까지 함께 제기됐고, 결국 교수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대한민국의 최고 지성과 전문성이 무너지는 순간을 온 국민이 지켜봤다.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시했다.

당시 PD수첩은 ‘사실 관계 파악’이라는 큰 줄기에서 여타의 보도형태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 만큼 제보를 토대로 한 팩트 체크와 논리적 검증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도구로 엄청난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국민들 역시 다소 생소한 생명공학 분야인 관계로, 보도내용을 따라가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을 이해하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야 했다. 체세포니 줄기세포, 처녀생식, 배양 같은 용어는 물론이고 (난자) 기증자를 뜻하는 ‘도너’라든가 ‘미즈메디’, ‘원천기술’ 같은 단어가 지금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황우석 사건’은 대한민국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정부나 전문가의 발표 내용을 듣고 대충 넘기지 않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권위’에 눈감은 사회가 어느 정도로 위험하게 변할 수 있는지 목도한 국민들은 그렇게 ‘시민’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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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자극적인 발언을 내뱉어 논란이다. 제2공항 입지선정 타당성 용역 재조사 검토위원회가 활동을 끝내고 각각 국토부 추천, 반대위 추천, 그리고 위원장 명의로 3개의 권고안을 발표한 지난 17일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다. 성산읍 일대의 제2공항 입지타당성과 현 제주공항 활용 가능성 등 각종 논란에 대해 국토부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반대위 측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전면 재검토와 추가 검증을 권고했다. 국토부가 추천한 위원장은 시간을 갖고 공론화 절차 이행을 권고했다. 사실상 반대위 측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에 대해 원 지사는 단호했다. 유튜브 방송에서 ‘제2공항 반대측이 주장하는 공론조사는 기술적인 전문가의 영역으로 비전문가들이 이를 결정하는 행위는 무책임한 주장이며, 공론조사 역시 반대를 위한 시간끌기라며 수용할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의심의 목소리를 전문가가 아니라 매도하며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도백으로서의 여유는 오간데 없고, 사업자처럼 바쁜 속내가 드러났다. 대화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정서적 ‘개문발차’다.

민주평화당 제주도당은 “막말 수준의 발언은 도민을 우롱하고 얕잡아 보는 자기 거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했고, 김태석 의장은 “개발을 정당화하는데 악용되는 전문가들의 식견보다 도민 개개인이 갖는 탁월함과 지혜에서 답을 구하라”며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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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어 생각해보면 원 지사의 얘기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누구나 전문가를 자처하기 쉽고, 진짜 전문가는 설 자리 조차 없다는 탄식도 분명 일리는 있다. 그럼에도 잣대는 공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이라면 곤란하다.

우선 프랑스 ADPi 보고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반대위가 예상했던 것처럼 국토부가 거짓말을 해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프랑스 ADPi 보고서에는 현 제주공항 활용방안에 대한 대안이 담겨 있다. 동서활주로와 남북활주로를 활용해 시간당 60회 이착륙이 가능하고, 공역 중첩과 터미널 확장, 관제 기능 보강 등 19가지 사항을 보완한다면 2035년까지 4500만명 수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원 지사는 보고서의 ‘전문성’을 가볍게 깔아뭉갰다. 그는 “권고사항을 충족시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건축물 고도 등 여러 상황과 충돌가능성에 대한 안전성 보장 등을 비춰봤을 때 ADPi의 분석결과를 채택할 수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려, 보다 근본적인 방안으로 제2공항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쯤되면 원 지사를 공항 전문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그는 4대강이 논란이던 불과 몇년 전에는 수질 전문가였다.)

모종의 전문가 그룹이 ADPi의 권고사항 19가지가 현실성이 없다고 대안에서 제외했다고 치자. ‘왜 현실성이 없다고 보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등에 대해서는 적절한 설명이 뒤따라야 할 것 아닌가. 누구도 용역진으로부터 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소식을 확인한 바 없다.

필요한 때만 ‘전문가의 말을 들으라’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문가가 현실을 모른다’고 평가절하한다. 이렇게 빙글빙긍 돈다면 누구를 진정한 전문가라 규정할 수 있겠나. 시민의 참여는 전문가가 제 역할을 포기했을 때 나왔다는 평범한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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