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으로 백성의 고통이 심하니 내가 먼저 반찬 수를 줄인다”
조선왕조실록 중
“임금이 절약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는가?”
“감선은 허례가 아니다. 윗사람이 검소하면 아랫사람이 절제한다”
탕평채로 잘 알려진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1694~1776)는 나라에 흉년이 들고 백성이 고통을 겪을 때마다 스스로 밥상을 줄이는 ‘감선(減膳)’으로 유명한 일화가 많다. 영조에게 있어 밥상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지도자의 메시지, 책임과 절제, 고통 분담의 의지를 행동으로 먼저 보이며 백성과 소통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제주교육을 보며 이 오래된 기록이 떠오르는 이유가 있다. 바로 지난 3일, 내년도 예산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해프닝 때문이다. 당시 도교육청은 내년도 예산을 예산 절벽 수준으로 진단하며, 드림노트북과 AI교과서, 초등 태블릿 사업 등 학생·현장 중심 사업을 줄줄이 삭감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기자가 “업무추진비도 삭감됐느냐” 묻자, 관계자는 30% 일괄적으로 감액 편성했다고 답했다. 교육감의 업무추진비도 마찬가지냐 재차 묻자, 옆에 있던 김 교육감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웃으며 거들었다. 교육감이 먼저 자신의 업무추진비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전체 조직을 다독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며칠 뒤,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도교육청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교육감 업무추진비는 그대로 유지한다. 감액된 것이 아니다”라고 바로잡았다. 그는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경황이 없이 이 내용을 바로잡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교육감의 잘못된 발언을 바로 잡을 용기가 없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결국 교육감 본인조차 자신의 업무추진비가 어떻게 편성됐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산 위기를 이유로 각종 사업과 학교 현장의 필수 예산을 대폭 줄여놓고, 정작 기관 수장의 업무추진비 1억 원은 그대로 유지하게 된 것이다.
교육 당국의 이번 예산 위기가 외부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기금은 상시 재원처럼 사용돼 바닥났고,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도 인건비는 전국 최고 증가율을 보이며 조직은 비대해졌다. 시설행정 확대는 경직성 예산을 키웠고, 제주도의회는 교육청의 중장기 재정 전략이 사실상 부재했다고 질타했다.
즉, 예산 절벽의 절반은 교육청 스스로 만든 위기다. 그런데도 교육감은 위기를 외부 탓으로 돌리고, 정작 자신의 예산이 감액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예산 절감의 주체가 아닌 제외된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런 전반의 상황을 지켜보며 영조의 감선 정신이 떠오른 것이다.
영조의 감선은 백성을 위한 절제였고, 오늘의 제주교육은 고통을 학생과 현장에만 전가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한 시대일수록 가장 먼저 줄여야 하는 것은 학생의 미래가 아니라 권력자의 밥상이다. 지도자의 진정성은 숫자가 아니라 “누구의 몫을 먼저 덜어내는가”에서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