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 제2공항 여론조사…오세훈 무상급식 전철 밟나

반대가 우세하게 나온 제2공항 찬반 도민 여론조사 결과가 원희룡 도지사의 정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원 지사와 제주도는 도민 여론조사의 해석과 추진 여부에 대한 정책 결정 자체를 국토부에 넘긴 모양새지만, 제2공항 찬성 단체와 주민을 비롯해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여론조사를 수용한 원 지사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낙마시킨 ‘무상급식 주민투표’처럼 이번 제2공항 도민 찬반 여론조사가 원 지사 자신을 비롯해 국민의힘의 발목을 잡는 ‘정치적 자해 행위’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는 지난해 12월 11일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제2공항 갈등해소특위가 도민 의견수렴 방식으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하며 출발했다. 하지만 선거 여론조사가 아닐 경우 안심번호를 발급받을 수 없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 해석에 따라 제주도와 도의회 특위 대신 제주도 기자협회 소속 9개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방식으로 주체가 변경됐다. 우여곡절 끝에 국토교통부 역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제주도가 도민 의견수렴 결과를 제출하면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키로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조사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대신 선거 여론조사인 만큼 정부의 국정 지지도와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같은 추가 문항을 포함하기로 했다. 

9개 언론사의 의뢰를 받은 한국갤럽과 엠브레인퍼블릭이 지난 15일부터 사흘 동안 5천명(도민 4천명, 성산읍 1천명)을 대상으로 제2공항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18일 오후 8시 공개했다. 조사 결과 도민 여론조사인 경우 한국갤럽이 반대가 오차 범위 내에서 찬성보다 높게 나왔고, 엠브레인퍼블릭은 오차 범위를 넘어 반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성산읍 주민 조사는 두 개 조사 기관 모두 찬성이 우세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과 엠브레인퍼블릭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반대 단체는 도민들의 뜻과 자기결정권이 여론조사로 확인됐다며 제2공항 추진 중단을 요구하라며 목소리를 높인 반면, 찬성 단체는 제2공항 추진을 중단할 명분이 없다며 기본계획 고시 등 정상 추진을 요구하는 복잡한 상황이 됐다. 19일 오전 좌남수 제주도의회의장이 여론조사 종료에 따른 도의회 입장문을 내고 “도민 결정을 겸허히 존중하며 약속대로 의회와 도가 합의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고, 원 지사는 “도의회와의 협의에 따라 공정관리 공동위원회를 거쳐 국토교통부에 있는 그대로 신속히 전달하겠다. 국토교통부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 이제는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이 마침표를 찍고, 도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일에 함께해 주시길 바란다”고 짧게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이날 원 지사와 좌 의장이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결국 따로 입장을 발표하게 됐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이번 여론조사에 협조한(사실상 판을 깔아준) 원희룡 도지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제주도당(위원장 장성철)은 19일 발표한 ‘제2공항 여론조사 결과는 제2공항 사업자체를 무효화 시킬 수준은 아니다’ 논평에서 정부 여당과 더불어 원 지사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도당은 “대형국책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아무리 참고용이라고 하지만 도청이 참여하여 실시해서는 안 된다”라며 “도정이 참여하기 되면 일정 수준의 정책적 구속력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대형 국책사업 추진 여부를 여론조사를 결정하게 될 수 있다. 매우 위험하다. 여론은 유동적이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사실상 원 지사를 비판했다. 

(※ 오영희 도의원 본회의장 발언 中)

국민의힘 내부의 미묘한 기류는 22일 도의회 본회의장에서도 표출됐다. 교섭단체 연설에 나선 국민의힘 오영희 원내대표는 “솔직히 조금 의아했다. 제2공항은 30년 전부터 추진해 온 도민 숙원 사업이자 원 도정의 가장 핵심적 사업임에도 국토부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만 발표했다”며 “사업 자체에 지나치게 소심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국토부가 제2공항 무효화 결정을 내리면 지사는 수용할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오 의원은 또 “여론조사 실시에 즈음해 타당성에 대해 도민들에게 드리는 말씀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지사는 민주당 국회의원 3인에게 갈등 해소를 위한 구체적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나”처럼 압박하며 평소의 소신과 생각을 구체적 대안과 함께 밝히라고 요구했다. 원 지사는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에 마침표를 찍고 도민 통합과 공동체 회복에 함께 해주시기 바란다”는 짧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그간 국민의힘 제주도당 안팎으로는 원 지사의 노골적인 대권 행보에 대해 우려 섞인 관측을 제기하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공식적 외부 대응은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제2공항 도민 찬반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도정의 밋밋한 대응이 지지층 결집은 커녕 대형 국책사업을 좌초시키는 무기력한 태도로 비치며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치적 승부수로 던졌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정치적 무덤이 된 것처럼 제2공항 도민 찬반 여론조사가 자칫 원 지사의 아킬레스 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지역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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